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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왜 필요한가? 안전 불감증을 끊어낼 강력한 변화의 시작
안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을 잃고 고통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배경에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고, 기존의 법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 반복되는 참사, 더 이상 개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산업재해나 시민재해는 주로 현장 작업자의 부주의나 관리자의 미흡한 지시 등으로 설명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건을 되짚어보면, 단순히 개인의 실수를 넘어 기업의 구조적인 안전 관리 소홀, 즉 '안전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기본적인 안전 조치가 부족했거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례 1: 이천 물류창고 화재 (2020년)
2020년 4월,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3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는 작업자들에게 화재 위험이 있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도록 지시하고, 화재감시자 미배치, 불량한 방화벽 설치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했습니다. 단순히 현장 관리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안전을 비용으로 인식하고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단순히 현장 책임자 몇 명을 처벌해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실제로 기존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 의무 위반 시 벌금이나 징역형이 부과되었지만, 이는 주로 현장 관계자나 법인에 대한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안전 문제에서 비껴가거나, 책임을 하부 조직에 전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2. '경영책임자 처벌'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영책임자 처벌'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법의 핵심은 기업이나 기관의 최고 책임자(대표이사, 사업주 등)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형사처벌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제품을 생산ㆍ판매하는 경우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안전을 현장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게 만듭니다. 최고 경영층이 직접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필요한 인력, 예산을 확보하며,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등 '총체적인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경영자의 의지가 없다면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3. 시민의 안전까지 확대된 책임 범위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주로 '근로자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시민의 안전'까지 책임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중대시민재해' 개념을 도입하여,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도 기업의 책임을 묻습니다.
사례 2: 가습기 살균제 사건 (2011년 이후)
이 사건은 기업이 제조한 제품의 유해성으로 인해 수많은 시민들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중대시민재해' 사례입니다. 당시에는 명확한 처벌 근거가 부족하여 피해자들이 오랜 시간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와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고, 기업이 제품의 안전성 확보에도 총체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여 소비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4. 사전 예방과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 강조
궁극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후 처벌을 넘어 사전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경영책임자는 단순히 사고가 발생한 후에 책임을 지는 것을 넘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할 의무를 집니다. 위험성 평가, 안전 교육, 유해 위험 요인 개선, 안전 예산 확보 등 모든 과정에서 경영자의 관심과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메시지입니다.
5. 결론: 안전한 사회를 위한 변화의 촉매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과 경영자에게 막중한 책임을 부여하는 '강한 법'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처벌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해소하고 안전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삼아 모든 구성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법 시행 초기에는 혼란과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와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약속입니다.